항목 ID | GC025C010301 |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민 |
요즘 들어 흔히 듣는 명칭 중의 하나가 ‘정보화 마을’, ‘청정 마을’ 등의 ‘00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은 국제화 마을일까? 사실 국경없는 마을은 국제화마을이란 명칭보다는 다문화 마을이라는 명칭이 더 적합하지만, 다문화라는 명칭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기도 하고, 다민족·다국가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다문화·국제화 마을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다문화·국제화마을이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출신의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이란 뜻이다.
원곡동이 다문화·국제화 마을이 된 것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동네로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조선족 동포가 안산시로 유입되기 시작한 1992년 무렵 부터이다.
특히 1994년 산업 연수생 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후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빠르게 유입되었다.
처음에는 조선족 동포를 중심으로 집단 주거지가 형성되었으며, 이를 거점으로 이주 노동자와 비정규 체류자들의 거점지역으로 성장하며 곧 이주민을 위한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 후 원곡동은 내국인과 합법적 이주민, 비정규 체류자가 함께 모여 사는 다문화 사회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2002년 불법 외국인 자진 신고 기간 이후에 불법 체류자들이 합법적 신분으로 등록되면서 그 수가 크게 늘어났다.
이와 때를 맞추어 그동안은 내국인이 다수이고 외국인은 소수였으나, 점차 마을 전체 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원곡동은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하며 수도권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흡입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지속적인 이주민 유입과 조선족에 의해 운영되는 상업 시설이 증가하며 원곡동의 경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식 간판이 늘어나더니,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목격되지 않았던 전화방, 중국식품 재료점, 중국식당 등 조선족 동포와 한족에게 필요한 중국식 생활 문화가 원곡동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크게 안산시 전체를 놓고 볼 때,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주 초기에는 대부분 공장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나 원곡동에 있는 회사 기숙사나 아니면 내국인과 함께 일반 주택에서 생활하며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으로 출퇴근하였다. 이렇게 모여든 노동자들은 거주지가 필요했고, 공단의 특성상 주거 시설이 없는 관계로 노동자들이 공장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안산시는 도시 설계 당시부터 직주분리(職住分離)의 개념이 도입되어 낮에는 공단인 직장으로 출근하고, 일과 후에는 주거 지역으로 퇴근하는 생활 패턴이 특징인 도시이다. 그리하여 초기 이주민들은 공장 한쪽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살거나 거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며 방세가 저렴한 원곡동으로 몰려들었다.
또한 안산시는 건설업에 필요한 경기 서남부 지역의 인력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자 고잔 신도시 개발로 인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로 건설업 관련 인력 수요가 많았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많은 공단 지역의 성격상 저임금 공장 노동자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이중적 인력 시장을 갖고 있었다. 내국인들은 이런 업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지만, 이주 노동자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되어 주었다.
외국인이 급증하자 원곡동의 상권과 생활 환경은 급속하게 변하였다. 내국인도 발빠르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방을 빌려 세를 받는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업종 변경이 이루어졌다. 상점의 주인도 장사에 필요한 외국어를 익혀야 하고, 부동산의 고객도 외국인이 다수가 되었다.
마을에서도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령 쓰레기는 규격 봉투에 버리고 분리 배출을 해야 하는데, 이를 모르거나 어기는 사람들이 있어 마을 미관이 더러워졌고 기초 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 가끔 발생하는 엽기적인 범죄는 치안을 맡고 있는 원곡지구대만으로는 너무 벅찬 문제가 되었다.
주변 환경이 자라나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집이 많아 원곡동에서는 내국인 아이들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여러 곳에 있던 어린이놀이터는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결국 지금의 원곡동 경관과 사회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다문화·국제화 마을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만 한다. 원곡동이 다문화·국제화 마을이 되었다는 것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같은 마을 안에 있는 2개의 주민센터이다. 원곡본동주민센터와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가 그곳이다.
즉 행정조직 측면에서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의 행정 처리는 내국인은 원곡본동주민센터에서, 외국인은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2월에 안산시의 26번째 주민센터로 문을 연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는 원곡동을 다문화가 공존하는 삶터로 바꾸는 중추 기관이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는 원래 ‘다문화교류센터’로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외국인도 한국 사회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안산시 공무원 17명이 일하는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외국인지원 센터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에서는 365일 연중무휴로 창업과 구직, 다문화 공동체사업, 생활 관련 상담을 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또 무료진료 센터 외에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외환 송금 센터도 들어서 있다. 8개 언어로 각종 상담이 가능한 통역 지원 센터에서는 낯설고 외로운 타국 생활의 고달픔을 덜어준다. 또한 각국 이주민들의 문화 축제를 지원하고, 다문화 이해교실을 운영해 문화 소통의 기회도 마련해 준다. 이와 함께 중국·베트남·필리핀·타이·몽골 등 17개 나라 거주 외국인 공동체 대표자 회의를 운영하면서, 안산 지역의 민간 외국인지원·보호센터들과 손잡고 다문화·다국적 지역 사회의 틀을 다지고 있다.
시화·반월공단을 끼고 있는 원곡동에는 이밖에도 안산이주민센터를 비롯해 온누리M센터, 안산 외국인 노동자의 집, 중국 동포의 집 등 시민·종교 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지원 단체가 20여 개에 이른다.
원곡동은 이제 한국의 다문화·국제화 마을의 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