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C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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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민 |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면 으레 큰 불편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생소한 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원곡동을 거닐다 보면, 마을 주민에게는 친근하고 편리한 곳이지만, 외지인들이 보면 생소한 곳들을 만나곤 한다.
원곡동에는 은행이 아주 많다. 좁은 동네에 외환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농협지점이 있고, 신협과 새마을금고까지 있다.
게다가 중국은행의 지점까지 있다.
국내의 일반 은행들은 보통 평일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 30분이 되면 문을 닫는다. 그러나 원곡동에 있는 은행들은 밤 9시가 되어도 문을 열고, 주말인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그 이유는 은행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손님이 외국인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일에는 은행을 이용하고 싶어도 근무 시간이라 은행 일을 볼 수 없다. 퇴근시간이 되거나 주말 쉬는 날이 되어야 시간이 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요일이나 야간 시간에 환전하여 주로 본국에 송금을 하거나, 본인 통장에 저축하거나 인출을 한다. 특히 중국은행은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근무해서인지 창구에서 쓰는 언어도 중국어가 쓰인다.
국경없는 거리에는 신화서점이라는 곳이 있다.
신화서점은 중국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중국 주요 도시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원곡동의 신화서점은 이름만 따 온 것으로 중국 본토의 신화서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책보다는 CD나 비디오테이프가 더 많고, 일반 책보다는 만화책이 많다. 주인은 흑룡강성 출신인데 서점을 1998년에 열었다고 한다. 취급하는 책이나 CD, 비디오테이프는 모두 중국 본토에서 제작한 것이다. 가격은 싸지 않으나 한국 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중국산 서적류나 비디오 제품을 구할 수 있다.
거리 곳곳에는 상점 안이나 밖에 수많은 전화기가 놓여 있는데 바로 전화방이다. 멀리 고향의 가족이나 친지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싶을 때, 그들은 일반 유선 전화나 핸드폰을 쓰지 않고, 요금이 훨씬 저렴한 전화방을 이용한다. 그러나 원곡동 이색 코너 전화방의 손님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보다 싸고 편리한 인터넷 전화나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핸드폰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곡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환전소들이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이니 환전소가 많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만큼 한국 돈이 되었든 외국돈이 되었든 현찰이 많이 돈다는 의미이다. 원곡동에는 정규 이주 노동자도 많지만, 이른바 비정규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많이 산다. 이 때문에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은행보다는 환전소가 여러 모로 편리하다. 환전소에서는 달러나 중국의 위안화가 많이 거래된다고 한다.
원곡동 곳곳에는 고시원 간판이 많다. 원곡동의 고시원들은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숙식을 하면서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숙소이다. 주로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비록 공간은 좁고 사생활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 공간인 고시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고시원의 수요가 많아서인지 고시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곡동에는 노래방도 많다. 외양은 한국의 어느 노래방과 큰 차이가 없으나 안에 들어가 보니 노래를 고르는 책자가 일반 노래방과는 확연히 눈에 띈다. 원곡동의 노래방은 통상 6개국의 언어가 지원된다. 노래방을 찾는 손님의 국적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장사를 하려면 비용이 더 들고 관리가 까다롭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국의 언어로 노래 부르며 춤추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외국 물품을 파는 가게를 들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생활용품이나 식료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처음 보는 과일이나 과자, 혹은 부식재료들에는 이상한 언어로 쓰여진 라벨이 붙어 있지만, 가격표에는 원(₩)화가 붙어 있다. 원곡동의 가게도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주인이었으나, 점차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가게 주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핸드폰 가게도 많은 업소 중의 하나이다. 특색은 종업원이 여러 나라 출신이라는 것이다. 보통 1개 업소에는 중국인, 베트남인 종업원과 영어 소통이 가능한 종업원들이 다양한 나라의 손님들에게 핸드폰을 판다.
원곡동에 핸드폰 가게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대체로 핸드폰 분실이 잦고 훼손이 많아 제품 사용기간이 짧다고 한다. 게다가 세계 최상의 제품들을 매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한국의 핸드폰 시장 구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젊은 이주 노동자들은 다양한 디자인과 고성능을 갖춘 최신 유행의 핸드폰을 구매하는 것도 한국 생활의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원곡동의 핸드폰 가게는 작은 종합무역상사라고 할 만하다.
원곡동에는 노동상담소와 인력소개소도 많다. 노동상담소에는 임금과 관련한 상담이나 산업 재해나 기타 열악한 근로 조건들을 상담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는다. 임금 문제는 체불이나 부당한 지급 문제가 많다. 인력소개소에서는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일일 노동자를 중개해 주는데, 이곳은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기에 많은 인력소개소가 위치하고 있다.
원곡동의 이색적인 업소는 우리에게 원곡동이 다문화 공동체임을 깨닫게 하는, 그러면서 거기에 사는 다양한 삶들을 살피고 알 수 있도록 재미와 지식을 주는 즐거움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