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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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영조 46)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조선의 간선 도로망을 여섯 개의 대로로 구분한 바 있다. 여섯 대로의 출발점은 모두 한성이고, 종착점은 조선반도의 각 극지에 있는 주요 도회이다. 제1로는 개성과 평양을 경유한 후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로이고, 제2로는 원산과 함흥을 경유한 후 경흥 서수라까지 이어지는 경흥로이며, 제3로는 원주와 강릉을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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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년 춘주 김도수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남유기(南遊記)」는 김도수(金道洙)[1699~1733]의 『춘주유고(春洲遺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김도수는 1727년(영조 3) 9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23일 동안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합천 해인사로 길을 잡아 그 일대를 두루 둘러보았다. 이어 충청도 화양동(華陽洞)에 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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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 범허정 송광연이 경상남도지리산 천왕봉과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두류기(頭流記)」는 송광연(宋光淵)[1638~1695]의 『범허정집(泛虛亭集)』 권7에 수록되어 있다. 송광연은 옥천군수(玉川郡守)로 재직하던 1680년(숙종 6) 윤8월 20일부터 27일까지 8일 동안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다. 옥천은 전라북도 순창의 고호(古號)이다. 구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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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양곡 오두인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두류산기(頭流山記)」는 오두인(吳斗寅)[1624~1689]의 『양곡집(陽谷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오두인은 1651년(효종 2) 11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는데, 「두류산기」는 이때 지은 것이다. 오두인의 자는 원징(元徵), 호는 양곡((陽谷), 본관은 해주(海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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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이계 황도익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두류산유행록(頭流山遊行錄)」은 황도익(黃道翼)[1678~1753]의 『이계집(夷溪集)』 권13에 수록되어 있다. 황도익은 1744년(영조 20) 8월 27일부터 9월 9일까지 13일 동안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두류산유행록」으로 기록하였다. 동행자는 황백후(黄伯厚), 이겸(李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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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경 구암 이정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登佛日庵前峯 俯窺龍湫鶴湫)」는 이정(李楨)[1512~1571]의 『구암집(龜巖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을 풀이하면 「불일암 앞 봉우리에 올라 용추와 학추를 내려다봄」이다. 『구암집』 속집에는 같은 제목의 오언 율시 1수가 실려 있다. 이정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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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조선 시대 선비들이 청학동이라 일컬었던 하동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 사이에는 수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불일폭포, 완폭대(翫瀑臺), 불일평전, 환학대(喚鶴臺) 등이 있으며, 마족암(馬足巖)도 그중 하나이다. 마족암은 청학동에 깃들어 살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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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하동 문학을 현전하는 작품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략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하동을 유람하고 지은 한문학 작품, 지역민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구비 문학, 그리고 근현대 하동 출신 작가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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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부사 성여신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암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방장산선유일기(方丈山仙遊日記)」는 『부사집(浮査集)』 권5에 실려 있다. 성여신(成汝信)[1546~1632]은 71살 때인 1616년(광해군 8) 9월 24일부터 10월 8일까지 15일 동안 하동을 거쳐 지리산[1,915m] 쌍계사(雙磎寺), 불일암(佛日庵), 신응사 등을 유람하였다. 성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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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하동 지역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가락국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칠불사와, 역대로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해온 선종(禪宗)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승려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봉안한 전설을 간직한 쌍계사(雙磎寺)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하동은 우리나라 불교의 진원지이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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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폭포.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고려 21대 왕 희종(熙宗)이 지눌이 머물던 암자에 ‘불일(佛日)’이라는 시호를 내려 암자 이름을 불일암(佛日庵)이라 하였는데, 그 가까이 있는 폭포이므로 불일폭포라 하였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남쪽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화개천 계곡 상류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약 60m에 이른다. 이 지역은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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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사찰.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불일폭포 위에 있는 불일암(佛日庵)은 신라 시대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였다. 고려 시대 때 이곳에서 수도한 목우자(牧牛子) 지눌(知訥)의 호가 불일보조(佛日普照)이기 때문에 암자의 이름을 ‘불일암’이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불일암기」에 “쌍계사에서 10리 남짓한 곳에 있으며, 고려 중기에 국사였던 목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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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대사 휴정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불일암에서 지은 한시. 「불일암(佛日庵)」은 『청허당대사집(淸虛堂大師集)』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불일암(佛日庵)은 쌍계사(雙溪寺)에 소속된 암자로 예로부터 선승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이 지리산[1,915m]에 주석할 때 불일암에서 참선하면서 지은 시로, 선정에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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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어우당 유몽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불일암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불일암(佛日菴)」은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시문집 『어우집(於于集)』 후집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유몽인은 남원부사로 재직하던 1611년(광해군 3) 3월 29일부터 4월 8일까지 지리산[1,915m]을 유람하고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을 남겼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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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4월 허재 정석구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불일암유산기(佛日庵遊山記)」는 정석구(丁錫龜)[1772~1833]의 『허재유고(虛齋遺稿)』 상편에 수록되어 있다. 정석구는 1810년(순조 10) 4월 기이관(奇而貫) 등과 함께 불일암(佛日庵)을 유람하고 그 감상을 「불일암유산기」로 남겼다. 정석구는 지리산[1,915m]을 여러 차례 유람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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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불일폭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불일폭포 용추의 쌀바위」는 불일암(佛日庵)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위에서 나오는 쌀을 발견하게 되고, 빨리 부자가 될 욕심에 구멍을 인위적으로 넓혀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허욕담이다. 이를 「용추 쌀바위」, 「용추 쌀바위 전설」 등이라고도 한다. 1986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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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라서 생활하며 불법을 익히는 장소.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는 북방 전래설(北方傳來說)과 남방 전래설(南方傳來說)이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북방 전래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북방 전래설에 따르면 불교는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수용되었는데, 372년(소수림왕 2) 전진의 아도와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들어와 고구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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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헌(南周獻)[1769~1821]은 함양군수로 재직하던 1807년(순조 7) 3월, 당시 경상관찰사 윤광안(尹光顔), 진주목사 이낙수(李洛秀), 산청현감 정유순(鄭有淳)과 함께 하동의 쌍계동(雙溪洞)과 삼신동(三神洞)을 유람하였다. 경상감사의 행차였던 만큼 유람 행렬이나 그들을 접대하는 관할 지역의 예우 또한 극치를 이루었다. 그의 유람은 아마도 현재까지 발굴된 100여 편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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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경 김창흡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 입구에서 지은 한시. 「쌍계동구(雙溪洞口)」는 『삼연집습유(三淵集拾遺)』 권7에 수록되어 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지리산[1,915m] 쌍계사(雙磎寺) 방면을 유람할 적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창흡은 1708년(숙종 34) 2월 3일부터 윤3월 21일까지 한양 집을 출발하여 판교→삼척→청송→밀양→진주→하동→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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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수광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를 유람하고 화개를 거쳐 악양으로 내려오는 동안의 경치와 감회를 읊은 한시. 「악양(岳陽)」은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문집 『지봉집(芝峯集)』 권18에 수록되어 있다. 이수광이 하동을 여행하면서 쌍계사(雙磎寺)와 화개를 거쳐 악양에 도착한 후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그 감회를 읊은 것이다. 이수광은 이외에도 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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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제호 양경우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암, 신흥사 등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역진연해군현 잉입두류 상쌍계신흥기행록(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은 양경우(梁慶遇)[1568~1629]의 『제호집(霽湖集)』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양경우는 1618년(광해군 10) 윤4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 33일 동안 전라남도 영암의 도갑사(道甲寺), 진도의 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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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완폭대(翫瀑臺)’의 ‘폭’은 불일폭포를 말하는 것으로, ‘불일폭포를 완상하며 노니는 바위’라는 뜻이다. 완폭대는 불일암(佛日庵) 바로 앞에 있던 바위로, 불일폭포와 청학동 경관을 조망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청학동을 유람하던 선비들이 유람록에서 자주 언급함으로써 더욱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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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수리의 명칭은 쌍계사의 동쪽에 있는 운수동(雲樹洞)에서 유래하여 음차된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운수동·신촌동(新村洞)·석문동(石門洞)·목압동(木鴨洞)·맥전동(麥田洞)이 통합되어 화개면 운수리가 되었다. 1632년(인조 10) 편찬된 『진양지(晉陽誌)』에 화개의 열 개 마을 중 지금의 운수리에 속한 곳이 쌍계촌[지금의 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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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남명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록(遊頭流錄)」은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은 58살 되던 해인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조식의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젊어서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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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년 담허재 김지백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는 『담허재집(澹虛齋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김지백(金之白)[1623~1671]은 1655년(효종 6) 10월 8일부터 10월 11일까지 나흘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유람록 말미에 의하면, 나흘간의 유람에서 일행들이 지은 100여 편의 한시를 1권의 시집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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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어우당 유몽인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과 지리산 천왕봉 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은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 권6에 수록되어 있다. 유몽인은 1611년(광해군 3) 3월 29일부터 4월 8일까지 9일간 지리산[1,915m] 천왕봉과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하였다. 유몽인의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于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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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 남계 신명구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과 신흥동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속록(遊頭流續錄)」은 신명구(申命耉)[1666~1742]의 『남계집(南溪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신명구는 1720년(숙종 46) 4월 6일부터 4월 14일까지 9일 동안 경상남도 하동과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이보다 한 해 전인 1719년(숙종 45) 5월 16일부터 5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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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고당 김규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김규태(金奎泰)[1902~1966]의 『고당집(顧堂集)』 권11에 수록되어 있다. 김규태는 1928년 5월 10~5월 11일 양일간 쌍계사(雙磎寺)와 불일폭포 일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유불일폭기」로 기록하였다. 동행이었던 매봉(梅峰) 오정표(吳正杓)[189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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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매봉 오정표가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불일폭기(遊佛日瀑記)」는 『매봉유고(梅峯遺稿)』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오정표(吳正杓)[1897~1946]는 1928년 6월 7~6월 8일 양일간 하동군의 불일폭포를 유람하였다. 동행한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1902~1966]도 「유불일폭기」라는 유람록을 남기고 있다. 오정표의 자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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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겸산 김성렬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청학동일기(遊靑鶴洞日記)」는 김성렬(金成烈)[1846~1919]의 『겸산집(兼山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김성렬은 1884년(고종 21) 5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1877년(고종 14) 가을에도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쌍계사(雙磎寺)와 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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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살고자 한다. “낙토(樂土)에서, 낙토에서 이제 나는 살고 싶네…… 낙국(樂國)에서, 낙국에서 이제 나는 살고 싶네.”라는 민초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미 중국의 옛 고전인 『시경(詩經)』에 담겨 있듯이, 이상향을 바라는 인간의 염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이상향에 관한 다양한 장소 관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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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산해(山海)·방장산인(方丈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조안습(曺安習)이고,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조영(曺永)[1428~1511]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조언형(曺彦亨)[1469~1526]이다. 증조할머니는 강성 문씨(江城文氏)로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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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미수 허목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쓴 유람록.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는 허목(許穆)[1595~1682]의 『미수기언(眉叟記言)』 권28 하편에 수록되어 있다. 허목은 1640년(인조 18) 9월 3일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을 유람하고서 「지리산청학동기」를 지었다. 허목의 자는 화보(和甫)·문보(文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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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의재 남주헌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과 지리산 천왕봉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지리산행기(地異山行記)」는 남주헌(南周獻)[1769~1821]의 『의재집(宜齋集)』 권11에 수록되어 있다. 남주헌은 함양군수로 재임하던 1807년(순조7) 3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9일 동안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는데, 이때 「지리산행기」를 지었다. 동행은 경상도관찰사 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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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명종 13)경 남명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한시. 「청학동(靑鶴洞)」은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이 지리산[1,915m] 청학동을 유람한 것은 58세 때인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이다. 조식의 거주지인 합천 삼가(三嘉)를 출발하여 진주를 거쳐 사천에서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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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 명암 정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청학동록(靑鶴洞錄)」은 정식(鄭栻)[1683~1746]의 『명암집(明庵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정식은 1743년(영조 19) 4월 21일부터 4월 28일까지 9일 동안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정식의 청학동 유람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이외에도 「두류록(頭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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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에 부속된 연못. 칠불사(七佛寺)는 약 1세기경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칠불사에서 수도한 지 2년 만에 성불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일곱 아들이 수도하여 성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 싶은 마음에 칠불사를 찾아가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불법이 심하여 사찰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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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경 하익범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칠불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칠불암(七佛庵)」은 하익범(河益範)[1767~1815]의 『사농와집(士農窩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하익범은 1807년(순조 7) 3월 26일부터 4월 8일까지 15일 동안 지리산[1,915m] 천왕봉과 하동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이때의 유람을 기록한 것이 「유두류록(遊頭流錄)」이다. 하익범은 진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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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절이다. 840년 진감(眞鑑)이 중창한 선종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현재 남아 있는 쌍계사와 관련한 자료 중 신빙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진감국사대공령탑비(眞鑑國師大空靈塔碑)’의 내용이다. 이 비문에 진감국사가 삼법(三法)이 머물던 터에 절과 육조영당(六祖影堂)을 세웠다는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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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 김창흡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영계서원을 방문하고 읊은 오언 장편의 한시. 「하동정일두서원(河東鄭一蠹書院)」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문집 『삼연집(三淵集)』 권8에 수록되어 있다. 김창흡이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을 모신 하동의 영계서원(永溪書院)을 방문하고 그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김창흡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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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부터 한 지방의 명승, 곧 아름다운 경치를 묶어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이라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단번에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이는 오랜 세월 문화적 평가가 누적되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팔경이란 명칭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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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와 운수리를 연결하는 도로. 1931년 3월에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5㎞ 구간의 도로가 개통되자 하동군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도로 주변에 벚나무 1,200그루와 복숭아나무 200그루를 심어 붙인 이름이다. 화개면은 지리산과 경계를 이루는 하동군 내 최고의 산악지대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다. 벚나무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온대지방에서 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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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화개곡사(花開谷司)’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고, 1454년(단종 2) 편찬된 『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는 화개부곡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이 명칭이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오면서 화개현이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삼한 시대 변한(弁韓)의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고, 가야 시대에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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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화개곡사(花開谷司)’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고, 1454년(단종 2) 편찬된 『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는 화개부곡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이 명칭이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오면서 화개현이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삼한 시대 변한(弁韓)의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고, 가야 시대에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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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하동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바위. 하동 청학동 일대에는 통일 신라 시대 은자(隱者)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쌍계사(雙磎寺) 경내에만 해도 최치원의 친필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를 비롯하여, 사찰 입구에 있는 ‘쌍계석문(雙磎石門)’이라는 네 자의 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