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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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山- |
영어의미역 | Living in Ansa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여성구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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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강희영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던 강희영이 지은 한시.
[개설]
강희영(姜羲永)[1796~1867]은 강준흠(姜浚欽)[1768~?]의 둘째 아들로, 1843년(헌종 9) 사마시에 급제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과 경산현령을 끝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안산 지역에 내려와서 살았다. 안산은 선조인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이 생존해 있을 때부터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더욱이 할아버지인 강세정(姜世靖)[1743~1818]은 안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강희영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수암동 원당사 계곡은 서해 바다를 굽어볼 수 있도록 탁 트인 전망이 아주 좋아 예부터 사대부들이 별장 자리로 선호하던 곳이었다. 「안산에 살며」는 강희영의 시집 『양산시고(諒山詩稿)』에 실려 있는 오언절구이다.
[내용]
연성복거후(蓮城卜居後)[연성에 터 잡고 산 지]
동절이삼회(冬節已三回)[겨울이 이미 세 번 지났네]
근리다현우(近里多賢友)[가까운 곳에 어진 벗들 많아]
시문일야개(柴門日夜開)[밤낮으로 사립문 열어 놓고 있다네]
[의의와 평가]
연성(蓮城)은 안산의 별칭으로 강희영은 이곳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읊고 있다. 강희영이 지은 「산거(山居)」라는 제목의 칠언절구에는 “원당지벽객래희(元堂地僻客來稀)[원당골은 궁벽하여 찾아오는 손님도 없어]/ 산리심상주엄비(山裏尋常晝掩扉)[낮에도 아무 일 없이 사립문은 닫친 채라네]"라고 하고 있어 이 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준다. 안산에 들어온 지 3년이 지나서야 어진 벗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강희영은 안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 밖에 「원당사에 올라」, 「다시 원당사에 올라」, 「가을날」 등의 시를 남겼다.